사랑의 약자인 당신이 가진 유일한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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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는 사랑하는 연인이 나를 얼마나 악랄하게 착취하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사이의 진짜 얼굴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제멋대로 연인을 떠나고 자신이 필요할 때면 나타나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아무렇지않게 하는 보영. 그러한 연인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잔인한지, 그로 인해 얼마나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잘 알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못하고 다시 받아주는 아휘. 한 명은 상처받고 다른 한명은 자유로운 이 불평등한 관계가 이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한명이 너무 사랑하고 다른 한명이 그것을 너무 잘 안다는 것.

연인이 서로에게 갖는 사랑을 양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그 양은 절대 같을 수 없다. 그렇기에 연인사이에 더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사람으로 관계의 묘햔 포지션이 형성되는데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보이는 태도다.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은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되고 권력을 손에 넣으면 휘두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연인이 그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순간, 사랑에 감사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 댓가없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순간 그 사랑은 더 이상 아름답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오직 쓰디 쓸 뿐이다.

보영은 조금이라도 기분이 내키지 않거나 지루해지면 아휘를 떠나버리곤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거나, 자신 옆에 아무도 없을 때면 그를 찾아와 다시 시작하는 말로 아휘를 휘감는다. 변덕이 심하고 자기자신 밖에 모르며 거기다 바람끼까지 심한 보영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휘는 그를 거부하지 못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에 그러자고 대답한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말과 달리 이들의 관계는 그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또 다시 보영이 떠나가자 아휘는 이제 정말 헤어지고 싶었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했다. 아휘가 주는 편리를 누리면서 갑자기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떠나고 그러다 다시 나타나고, 그 행동에 대해 전혀 미안함이 없는 보영이 지긋지긋해졌다. 하지만 가장 지긋지긋한건 그를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이었다. 그래서 아휘는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너무 두려웠다. 그가 헤어지기위해 할 수 있는 건 피하는 것 뿐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보영의 막강한 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보영을 피했다.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너무 두려웠다. 이제는 정말 헤어지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진짜 두려운 이유는 그 말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이라는 것, 그래서 애초에 다시 시작하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는 것에 있다. 근데 더 무서운 것은 그말을 내가 뿌리칠 자신이 없게 아직 미련하게도 마음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두렵지 않기 위해선, 그 말에 당당히 거부할 수 있기 위해선 그 관계를 끝내야만 한다. 당신의 사랑을 무기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절대 먼저 그 관계를 끝내지 않는다. 당신이라는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얼마나 자유롭게 해주는지 그 사람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절대 당신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먼저 끝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 관계는 역설적이게도 관계 속 약자인 당신만이 끊을 수 있다.

보영과 가까운 공간에서 그를 피하던 아휘는 보영과의 추억을 그와 함께 오기로 했던 이과수 폭포에 눈물로 흘려버리고 마침내 홍콩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엔딩즈음 홍콩에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가는 아휘는 얼굴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 내내 아휘는 좀처럼 웃지 않아 이 마지막 엔딩에서 그의 미소는 확실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미소가 비로소 다시 시작하자는 말의 두려움에 해방되었음을, 또한 진정한 다시 시작이 가능함을 상싱적으로 보여준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시작이 있어야 끝도 있다. 하지만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있다. 아휘는 깨달았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끝내야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끝내야 비로소 끝나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새로운 시작은 끝이 나야만이 가능하고 그 새로운 시작을 함께할 사람은 과거의 사람이 아님을.

만약 당신의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고 떠난 연인이 슬픈얼굴로 나타나 우리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한다면 그 말을 기뻐하지 말아라. 그 사람은 다시 시작할 마음이 없다. 그 사람은 예전과 같이 당신이 주었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권력을 당신에게 휘두르고 싶어하는 것이니깐. 그래서 자신이 당신으로부터 얻고자하는 것들을 마구 착취해 갈테니깐. 당신의 마음, 당신의 눈물, 당신의 몸, 당신이 주던 수많은 편리들. 그들이 말하는 다시 시작은 새로움이 아닌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임을 기억해라. 그러니 그 말을 기다리지도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수 있게 그 관계를 끝낼 것. 그래서 그 사람의 권력을 무력화시킬 것. 그것이 줄곧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처받고 착취당하고 눈물을 쏟았던 당신이 휘두룰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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